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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oying Opera: 밤의 유대
유사음악(기만x동공)+살친구(양승욱x허호)
2020. 12. 26. ~ 2021. 1. 16.
킵인터치 서울
Annoying Opera
오렌지는 조롱을 멈추지 않는다. 실없는 소리인 줄 알면서도 모두가 따라 한다. 매서운 칼날에 숨을 옥죄어오는 공포가 찾아와도 그때뿐, 누렇고 기분 나쁜 웃음소리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다시 시작된다. 모두가 따라 웃는다. 울퉁불퉁하고 두꺼운 껍질은 절대 벗겨지지 않는다.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한 편의 오페라를 보았다. 돌아오는 길 이곳저곳에서는 많은 불빛들이 지겹도록 빛을 뿜어냈다. 몰락한 밤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귀에는 눈꺼풀이 없다고 했던가1), 가만히 들어야만 했던 자라스트로의 마지막 노랫소리를 기억에서 떨쳐낼 수가 없다. “태양의 빛은 밤을 몰아냈다.” 매우 단순한 화성음의 나열로써 모차르트는 권력자의 입으로 세계의 안정을 가장 장엄하게 선언했다. 모두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 누런 미소를.
시간은 의지대로 그 흐름을 달리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그런 시간 위에서 빠르게 휘발되어 사라지는, 물질도 아닌 소리를 붙잡고 형식을 다루고 내용을 담고자 하니, 어쩌면 그래서 음악은 가장 정신적인 활동의 예술로 여겨지는 듯싶다. 음악은 계속해서 새로 생겨나는 시간 위에서 쉽게 사라지는 소리를 끊임없이 재현해내야만 성립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성질 때문에 향유됨에 있어서는 수동성을 띠게 되어 변화한 시대상과 괴리된 과거지향적 예술로써 쉽게 정체된다.
이러한 양태를 벗어나기 위한 시도는 오페라라는 장르에 주목함으로써 수행될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의 한 축인 오페라도 역시 재현예술로써의 특징에 종속되어 있지만, 종합예술 장르로써 다양한 매체의 특성을 함께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매체횡단적인 시도를 통한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발견으로부터 공감대를 형성한 유사음악과 살친구는 가장 먼저 오페라 〈마술피리〉에 실험적으로 접근하여 재구성 활동을 시작했다. 오페라 〈마술피리〉는 많은 무대에서 ‘어린이를 위한 오페라’로 연출되는 등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것을 두고 ‘말 같지도 않은 기획’2)이라는 상반된 평가가 있을 만큼 작품 해석에 있어 여지가 다분하다.
전시 《어노잉 오페라: 밤의 유대》는 오페라 〈마술피리〉의 직접적인 향유 주체이자 재창작의 참여자로서의 작가들의 시각으로부터 출발한다. 작가들은 작품의 개연성이 부족한 서사 구성과 지극히 편견적인 인물 설정 등에 주목한 재해석 가능성 탐구를 선행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다각화된 표현방식의 작품들이 본래의 신비를 탈각시키는 경향을 띠는 것은 본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이다. 유사음악은 주로 음악적 내용 및 구성을 토대로 작품 서사 내에서 그것이 가진 위치를 밝히는 작업과 함께, 넓게는 음악이 관습에 의해 유독 수동적으로 수용되는 현상을 방증해 보인다. 살친구는 기존의 작품 재현에 있어 늘 배제되는 소수자들을 재구성 세계관의 중심에 놓아 작품들을 구성하였으며, 이는 동질감이나 공감을 얻지 못해 이해나 수용에 어려움을 느낀 이들을 실질적인 참여자로서 포섭하여 기존의 틀을 허무는 시도로 작용한다.
밤의 유대
예술의 시초를 발견하고자 어두운 동굴 속을 헤집는 사람들처럼, 돌아오지 않는 밤을 찾아 나선다. 신비함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하찮은 흙과 돌 위의 조악한 그림을 마주하게 되면, 비로소 시간의 흐름을 깨닫게 된다. 어둠 속에서 기꺼이 길을 안내하는 소리는 사라져 들리지 않지만,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며 무엇을 발견하게 되는가? 그것은 자라스트로의 목소리에 섞인 허황됨이며, 두꺼운 껍질에 피어난 새하얀 곰팡이며, 그 누런 미소들 사이에서 웃을 수 없는 존재의 초상이다. 밤의 유대는, 그런 것이다. 타미노는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다.
1)파스칼 키냐르, 『음악 혐오 (La haine de la musique)』, 김유진 옮김, 프란츠, p.104
2)박종호, 『예술은 언제 슬퍼하는가』, 2016, 민음사, p.157
서문: 기만
기획: 유사음악x살친구
포스터디자인: 김민
장소 제공: 킵인터치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