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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ndemic - 2부 <혐오>

허호, 김망고, 사랑해
2020. 10. 5. ~ 10. 12.

연무지개 2020, 오손도손

"19세기 내내 질병의 은유는 훨씬 악랄해지고, 불합리해지고, 선동적이 되어갔다. 게다가, 질병의 은유는 질병을 비난하는 상황을 환기시키는 경향이 점점 강해졌다. 건강의 일부이거나 자연의 일부로 여겨질 수도 있을 법한 질병은 '부자연스러운' 모든 것의 동의어가 됐다.” 수잔 손탁,  『은유로서의 질병』,이후(2002).

 

수잔 손택(Susan Sontag)은 19세기 창궐한 결핵과 그 다음 세대에 등장한 암을 소재로 질병에 기생한 은유 들을 추적한다. 인류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 질병의 불확실성에서 인간은 죽음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정복 할 수없고 정체를 알수 없는 죽음 앞에 인간은 공포심을 느끼고 질병에 갖가지 의미를 부여한다.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가 숙주와 접촉해 감염되고 질환을 일으킨다' 이 단순한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정복하지 못해 인간은 절대신을 찾고 질병을 신의 심판으로 간주했으며, 감염자는 도덕적 결함이 있는 자로 매도되었다. 질병 위에 켜켜이 쌓인 은유적인 이미지들은 인간이 이성적 판단을 할수없게 만들었다.

 

1980년대 에이즈가 발견된 초기에 미국에서는 ‘동성애자 암’, ‘동성애자 역병’ 으로 불렸다. 성교가 주된 감염로로 알려지면서 감염자들은 공격 대상이 되었고 그들의 문란한 도덕적 규범이 약점이 되었다. 에이즈의 경우 대부분 혈액에 의한 감염에 의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에이즈는 불특정 소수의(다수일지도 모르지만) 종교인들에게는 동성애자를 향한 신의 벌처럼 여겨진다. 치료법이 발달하여 당뇨병과 같은 조절이 가능한 만성질환이 된 현재에도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covid-19(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19), 일명 코로나19는 2019년 12월 중국에서 최초 보고된 이후 현재까지 전 세계로 확산 지속되고 있는 범유행 전염병이다. 시민들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불특정 다수와의 비접촉을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하였다. 5월 5일(어린이날)의 긴 연휴에 느슨해진 긴장을 틈 타 이태원 클럽에 확진자가 발생하였고 게이클럽에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기사 제목과 함께 과도한 신상털이와 아웃팅이 자행되었다. 클럽에 방문했던 사람들은(그들의 성정체성이 무엇이던 간에) 성소수자로 의심 받게 되었다. 언론은 자극적인 기사와 함께 시민들을 자극하며 혐오에 불을 지폈다. 한국 특유의 공동체주의와 게이클럽에 대한 편협한 시선으로 형성된 도덕적 결함은 혐오자들에게는 충분한 공격 사유가 되었다.

 

두번의 판데믹을 거치면서 소수자들의 몸을 ‘병적인’ 신체로 여기는 시선은 더욱 강화되었다. 미지의 것으로서 그들의 몸은 더럽고, 불결하며 어딘가 문제있는 신체가 되었다. 정상과는 다른 상태를 규정하는 몸이 된 것이다. 코로나 이후 가속화된 혐오의 시선은 ‘병든 몸들’을 공포의 대상으로 환원시켰다. 더욱 더 빠르게 어딘가 외곽에 있는 몸, 소수의 몸들을 공포의 대상으로서 획일시킨 것이다. 이렇듯 ‘병적인’ 신체는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 질병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몸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질병의 근원으로 인식되고 주류의 논점에서 벗어나 있는, 사각지대에서 살아가는 신체다. 이 사이에는 오해와 암시가 빈번히 발생한다. 비좁은 혐오의 인식들 사이에서 개인의 몸은 누설되고, 편집되며 이 해의 간극이 발생하는 것이다. 본 전시는 병들고 아픈, 공포스러운 몸들의 주체들이 직접 꾸린 전시이다. 그들은 균이 자리한 몸으로 번역하여 이야기를 전달한다. 자신들의 삶을 횡단하 며 화면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발설하거나 신체 일부를 전시장에 드러낸다.

병적인 -소수의- 몸은 대다수의 신체와 다르기에 오해받는다. 아프고, 별나고 이상한 감각들과 일체된 몸이다. 소수의 삶의 질병적인 것이라면, 이들의 몸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들의 몸은 가장 선명하게 욕망을 실연하는 몸이다. 모든 것을 투과하는 몸이고 감각하는 몸이다. 이곳에는 이들이 공포의 신체로서 받아온 혐오의 시선들이 그대로 투과되어 있다. 가장 선명한 몸들로서 받아온 폭력의 잔상들이 리트머스지처럼 찍혀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그들의 몸에 가해진 폭력의 흔적들이다.

2020년을 맞아 '더러운 것'을 지워내는 태도는 각 개개인의 삶 깊숙이 전달되었다. 과연 건강한 신체가 정상적인 것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완치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까? 혹은 이 차별(억압)의 끝은 어디일까? 목적 없던 폭력들을 직면한 후 다시 인식하게 되는 세계는 사회가 나아가는 단일한 목표체계에서 벗어나 우리의 몸들이 스스로 말하는 시간에 초점을 맞추게 한다. 지금 여기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는 존재들을 똑바로 직시하게 한다. 들여다본다는 것은 어쩌면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방법이 될 것이다. 범람하는 혐오의 물결을 잠재우고, 무차별적인 폭력의 말들을 멈추어야 한다.

오역되는 몸들에 애도를, 그들의 정의에 따르면 영영 나을 수 없는 몸을 가진 우리의 삶을 직역하자. 모든 게 분명하게 보이는 이곳에서, 과연 누가 병에 걸린 몸이고 누가 그렇지 않을 까? 비정형의 몸들이 질병의 시대 안에서 일제히 발언한다.

 

서론: 김경현, 박혜림

기획: 김경현

포스터디자인: 김민

​주최: 연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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