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 HUR
깜짝
허호 개인전
2021. 09. 07. ~ 09. 12.
청년예술청 SAPY 화이트룸
이성애자가 생각하는 동성애자, 그들이 규정지은 정체성의 표상을 해체하기 : 허호
허호 개인전 <깜짝> 서문
유투브를 보다 보면 깜짝카메라를 서로에게 하는 채널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현실에서 내 지인에게 혹은 나에게 하면 바로 절교 당할 거 같은 심한 장난은 아무 생각 없이 보기 자극적이고 중독성이 있다. 낄낄거리며 보다 보니, 거슬리는 부분이 많았다. ‘같이 살던 친구가 게이라고?’ ‘자고 일어났더니 게이가 되어버렸다면?’ 이런 부류의 깜짝카메라는 5-6년전 유투브 초창기부터 성소수자를 희화화 시킨다는 논란이 꾸준히 있었다. 심지어 지인 중 하나는 자기가 보던 유투버에게 진지한 메일을 보내는 일도 있었지만, 성소수자 공동체 안에서만 분노하고 밖에서는 끊임없이 ‘자극적이고 웃긴’ 소재로 쓰이는 것이다. 2013년 당시 게이 희화화로 유명세를 치렀던 엉덩국과 소방차게임에 분노하는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러나 엉덩국도 소방차게임도 여전히 7년이 지난 2021년에도 똑같이 게이를 희화화 시키는 것도 모자라’ 빨간불에도 소방차는 멈추지 않아, BOY’ 등이 영상에 쓰이면 ‘와, 추억이다’ 하며 단합을 시키고 있다. 진지하게 몇 번 댓글을 남길까 했지만, 뻔히 보인다. 댓글을 남기면, PC충, 똥꼬충 소리를 들으며 싫어요 만 달리고 채널 주인 옹호+욕하는 답글이 잔뜩 달릴 게 눈에 선하다. 마마무와 에스나가 같이 부른 ‘아훕’이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수준이 맞아야 대화를 할 것 아냐?’ 맞다. 나는 문제의식을 느껴도 같은 공동체, 채널을 향유하는 청자들이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으면 나는 그저 노잼똥꼬충이 되는 것이다. 얼마나 안일하고 폭력적인지 의식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희로애락만 강조하는, 그리고 그것을 공감하고 동조하는 공동체 안에서 나는 웃을 수가 없다. (규범사회에서 항상 그래왔지만, 새삼스럽지도 않다.)
근데 그냥 계속 봤다. 사실 계속 보게 된 건 일단 채널 주인이 잘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회초년생 20대 중후반의 남성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는데 여기서 게이인 내가 혹하는 부분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계란말이를 해달라고 떼를 쓰는데 ‘내가 니 엄마냐?’ 하며 욕하다가도 해주거나, 친구들이 부부사기단이라고 부를 정도로 오랜 시간 합이 잘 맞게 된 관계에서 보이는 티키타카 같은 것, 오히려 깜짝카메라에 게이를 희화화시키는 거보다 더욱 호모로맨틱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더 관찰해보니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까지 남성, 특히 개그 채널을 운영하는 개그맨 팀들이 모여 사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그리고 똑같이 자가복제를 한 것처럼 비슷한 소재의 자극적인 깜짝카메라를 한다) 게다가 특히 반나체, 혹은 전신 나체가 스스럼없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나에게 호모섹슈얼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생각해보면 많은 게이의 판타지 소설에 등장하는 설정 중 하나는 공사장이나 군대 같은 공동체에서 전우애+ 급작스러운 사고처럼 일어나는 호모로맨틱-호모섹슈얼한 순간/관계일 것인데 그런 부분과 닮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이 육체들을 대놓고 호모섹슈얼한 회화로 환원시켜보기로 했다. 인터넷-베이스로 그림을 그리는 나에게 대놓고 보라고 찍어대는, 그 ‘악의 없는’ 혐오를 재생산하고 소수자를 희화화를 시키는 그들의 피사체를 게이를 위한 콘텐츠로 환원시킨다면 얼마나 짜릿한 복수가 될까?
퀴어라는 단어는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일반화시키는 카테고리를 무너뜨리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체성을 드러내고 게이 커뮤니티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가끔 내가 오히려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이 든다. 최종적으로 게이 작업을 하는 작가로 기억된다기보다 사람들을 분류시키는 틀을 제거하고 싶다. 이제 더 성애적으로 어떤 성을 좋아하는 가는 집단을 일반화시키기 부족한 근거다. 결과적으로는 이성애자가 따라 하는 ‘게이’가 게이에 가깝지 않고 굳이 규정시키고 싶다면 그들이 맺은 단단한 관계가 ‘게이’에 가깝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실상 규정지을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되레 어떤 걸 게이로 일반화 시킬 수 있는지에 관한 물음이다.
추신: 이 전시의 제목이 ‘깜짝’인 이유는 게이를 희화화시키는 콘텐츠의 모든 제목의 말머리가 ‘몰카’이다. 이제 몰카라는 단어는 한국이 해외에 수출한 불명예스러운 대명사이다. 이걸 알고 있는 유투버는 깜짝카메라라는 대체어를 쓰지만, 이들에게는 이런 문제의식이 전혀 공유되지 않음을 통일된 ‘몰카’ 말머리에서 드러난다. 또한 동시에 깜짝스럽게 그들을 대상화시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포스터디자인: 슬
글: 아키나, 이지혜, Sein zum Tode
사진: 양승욱, 이현석
주최: 청년예술청 SAPY
후원: 서울문화재단, 청년예술청